한비자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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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ation Date 2019/03/20
Pages/Weight/Size 128*188*30mm
ISBN 9791128834486
Categories 인문 > 동양철학
Description
진시황제는 법가 사상을 기초로 부국강병책을 시행해 춘추전국시대에 마침표를 찍었다. 진시황제도 반한 인물, 한비는 법가 사상을 집대성한 사상가로 명성을 얻었다. 유가를 배척하고 공정한 법 집행을 통한 다스림을 추구한 한비의 글을 엮은 『한비자』는 훗날 중국의 지도자들이 즐겨 읽고 통치에 활용한 책이다. 사상뿐만 아니라 문학적으로도 뛰어난 가치가 있다.

* 『한비자』 전체 55편을 1∼3권으로 나누어 출간했다. 그중 1권은 1편부터 29편을, 2권은 30편부터 35편을, 3권은 36편부터 55편을 수록했다.
Contents
제1편 초견진(初見秦)-진나라 군주를 처음으로 알현하러 감 3
제2편 존한(存韓)-한나라를 지킴 21
제3편 난언(難言)-군주에게 말을 올리는 어려움 35
제4편 애신(愛臣)-군주가 총애하는 신하 47
제5편 주도(主道)-군주의 통치술 53
제6편 유도(有度)-나라에 법도가 있어야 하는 이유 63
제7편 이병(二柄)-군주가 갖는 두 가지 권한 77
제8편 양각(揚?)-신하를 다스리는 대략적인 원칙 87
제9편 팔간(八姦)-여덟 가지 간교한 수단 101
제10편 십과(十過)-군주가 범하지 말아야 할 열 가지 과오 111
제11편 고분(孤憤)-고립무원의 처지와 세태를 분개함 153
제12편 세난(說難)-유세의 어려움 165
제13편 화씨(和氏)-화씨의 옥 179
제14편 간겁시신(姦劫弑臣)-간교한 신하와 군주를 겁박하고 시해하는 신하 187
제15편 망징(亡徵)-나라가 망하는 징조 209
제16편 삼수(三守)-지켜야 할 세 가지 원칙 221
제17편 비내(備內)-궁궐 안을 단속함 227
제18편 남면(南面)-남쪽을 향해 세상을 다스림 237
제19편 식사(飾邪)-간교함을 다스림 247
제20편 해로(解老)-≪노자≫를 풀이함 265
제21편 유로(喩老)-≪노자≫를 비유로 설명함 303
제22편 설림 상(說林上)-이야기 모음집 상 327
제23편 설림 하(說林下)-이야기 모음집 하 355
제24편 관행(觀行)-행동을 관찰함 383
제25편 안위(安危)-나라의 안위 389
제26편 수도(守道)-나라를 지키는 방법 399
제27편 용인(用人)-사람을 잘 쓰는 방법 409
제28편 공명(功名)-공적과 명성을 쌓는 방법 419
제29편 대체(大體)-전체적인 국면을 살핌 425
Author
한비,권용호
전국시대 말기 한(韓)나라 출신으로 기원전 약 280년경 태어나 233년 세상을 떠났다. 원래 이름은 ‘한비’로 그의 이름을 높여 부른 것이 ‘한비자’이다. 그는 한나라 왕의 아들로 어머니는 후궁이었다.
한비자는 말을 더듬고 말을 잘 꾸미지 못했지만, 재주와 생각이 남다르고 글을 잘 써 중국 법가 학파를 대표하는 이름난 사상가가 되었다. 그의 법가 사상은 전국시대의 혼란과 한 나라의 어려운 처지 안에서 발전했다. 약한 나라를 구하는 방법은 오직 엄한 법으로 백성들을 다스려 나라의 힘을 한 길로 동원함으로써 부강하게 되는 것뿐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의 글은 한나라의 군주에게는 주목받지 못하였으나 진왕만은 한비자의 가치를 제대로 알아보았다. 진시황이 진왕이던 시절, 한비자의 저술을 읽고는 “이 사람을 한번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고 감탄을 연발했다. 한을 공격하여 실제로 한비자를 만난 진왕은 자신의 통일 대업에 한비자의 도움을 얻고 싶어 했으나 그를 완전히 믿지 못했다. 그러다 진나라의 재상으로 있던 이사의 모함을 받자 마음이 돌아서 한비자에게 사약을 보내고 만다.
사마천은 한비자의 죽음을 두고 “세난(說難, 유세와 설득의 어려움) 같은 훌륭한 글을 썼으면서도 자신은 그로 인한 재앙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했다. 진왕은 한비자를 죽였으나 진시황이 된 뒤 한비자의 법술 이론에 큰 영향을 받고, 천하 통치의 이론적인 버팀목으로 활용했다.
전국시대 말기 한(韓)나라 출신으로 기원전 약 280년경 태어나 233년 세상을 떠났다. 원래 이름은 ‘한비’로 그의 이름을 높여 부른 것이 ‘한비자’이다. 그는 한나라 왕의 아들로 어머니는 후궁이었다.
한비자는 말을 더듬고 말을 잘 꾸미지 못했지만, 재주와 생각이 남다르고 글을 잘 써 중국 법가 학파를 대표하는 이름난 사상가가 되었다. 그의 법가 사상은 전국시대의 혼란과 한 나라의 어려운 처지 안에서 발전했다. 약한 나라를 구하는 방법은 오직 엄한 법으로 백성들을 다스려 나라의 힘을 한 길로 동원함으로써 부강하게 되는 것뿐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의 글은 한나라의 군주에게는 주목받지 못하였으나 진왕만은 한비자의 가치를 제대로 알아보았다. 진시황이 진왕이던 시절, 한비자의 저술을 읽고는 “이 사람을 한번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고 감탄을 연발했다. 한을 공격하여 실제로 한비자를 만난 진왕은 자신의 통일 대업에 한비자의 도움을 얻고 싶어 했으나 그를 완전히 믿지 못했다. 그러다 진나라의 재상으로 있던 이사의 모함을 받자 마음이 돌아서 한비자에게 사약을 보내고 만다.
사마천은 한비자의 죽음을 두고 “세난(說難, 유세와 설득의 어려움) 같은 훌륭한 글을 썼으면서도 자신은 그로 인한 재앙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했다. 진왕은 한비자를 죽였으나 진시황이 된 뒤 한비자의 법술 이론에 큰 영향을 받고, 천하 통치의 이론적인 버팀목으로 활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