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부터 지금까지 6여 년간 충남대, 경희대, 성심외국어대, 경찰대학 등 대학 강의실에서 『논어』를 강의해온 영산대 배병삼 교수가, 그 동안 축적한 생생한 연구 성과를 두 권의 책으로 묶었다. 『한글세대가 본 논어』는 활기차고 생동감 넘치는 대학 강의의 연장이요, 꾸준하고 성실한 『논어』 연구의 집적물이라 하겠다.
저자는 '서문'에서 "『논어』의 힘은, 개념의 명징함, 도덕적 엄격성, 논리의 정연함에 있다기보다는, 짐승과 같은 몸뚱이를 가졌어도 신성(神聖)을 꿈꾸는 인간에 대한 신뢰와, 현실의 척박함에 대한 공자의 안타까움이 통시적 공감을 획득할 때 얻어진다"고 말하고 있다. 결국 공자의 눈물(안타까움)을 '오늘, 우리말'로 풀어보고자 한 것이 『한글세대가 본 논어』의 시발이었던 것. 그만큼 이 책은 '공자'와 『논어』의 인간적인 면에 주목하여, 언어·사람, 나아가 예와 문명에 대한 새로운 앎의 방법론을 제시한다.
한글세대를 위한 『논어』
주자의 『논어집주』, 다산의 『논어고금주』, 진사이의 『논어고의』, 오규 소라이의 『논어징』…… 선학의 주석을 꼼꼼히 따져 읽은 후 저자가 주목한 부분은 시간을 초월한 『논어』 해석의 '상동성'과, 시공간의 구속을 통해 드러난 각 해설의 '독특성'이었다. 후자는 '현재'라는 시공간에서의 새로운 『논어』 읽기의 가능성을 열어주었고, 문학평론·시·수상록·잡지의 글 들을 거름으로 하여 '한글세대'를 위한 새로운 『논어』 해설서가 등장했다.
그리하여 이 책은
·『논어』를 철저히 '21세기 서울말'로 읽고 해석하였으며,
·서구 학문과는 대비되는 '정치학적' 입장으로, 우리 전통적 삶을 틀 지은 토대로서 『논어』를 살피고 있다.
·각 장절(章節)의 독립된 의미에 주목하되, 『논어』 전편을 관통하는 맥락을 추적하여 일관된 체계로 읽고 있다.
또한 각 장절마다 구어체로 평이하게 우리말 번역을 앞에 두고, 원문을 게시하였다. 그 밑에 원문의 자구(字句)를 고증하고 해석한 '자해(字解)'를 붙였으며, 그 아래 저자의 해설을 붙였다. 부연 설명이 필요한 부분에 '참고'를 달았으며, 책의 끝부분에 '해제'를 붙여 저자가 생각하는 공자와 『논어』의 전모를 서술하였기 때문에 처음 『논어』를 접하는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다.
왜 『논어』인가
“시시껄렁한 권학서가 아니다. 조잡한 읽을거리도 아니다.
{논어}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를 고민해보았거나, 인간다운 삶이 뭔지를 고민하는 성인들
그리고 조숙한 학생들을 위한 책이다”
『논어』 속에 학(學), 습(習)이라는 단어가 나오고, 기쁨(說)이니 즐거움(樂)이라는 단어가 나오니까 마치 중고등학교 수험생들이나 볼 거라는 편견 때문에 『논어』 읽기를 피해온 독자도 있을 것이다. 저자는 "『논어』는 인생을 자기 책임하에 주체적이고 자율적으로 살아가려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다"고 말한다. 하릴없이 책상머리에 앉아 있는 사람에게 공부하기를 강권하는 내용은 한 대목도 찾을 수 없다. 『논어』는 자기 삶의 행로를 결정한 사람, 혹은 적어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고민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다.
『논어』「학이」편, 제1장은 이러한 『논어』의 대지(大旨)를 보여주는 부분이다. 저자의 해설에 따르면,
첫째, 『논어』는 '하기 싫은 공부라도 열심히 하고 나면, 재미나고 신난다'는 식의 시시껄렁한 권학서(勸學書)가 아니다.
둘째, 『논어』는 독자로 하여금 전문적인 학자나 문필가와 같은 서생이 되기를 권면하는 학술서도 아니다.(공자는 긁읽기로서의 공부는 나머지 시간이 있을 때 하는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셋째, 그렇다고 '제 하고 싶은 걸 마음껏 하기'를 권하는, 자유방임을 조장하는 조잡한 읽을거리도 아니다. 『논어』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를 고민해보았거나, 인간다운 삶이 뭔지를 고민하는 성인들 그리고 조숙한 젊은이들을 위한 책이다. 『논어』는 "무엇보다도 삶 자체를 낯설게 여겨 일상을 내내 설레며 살기를 기약하는 책"이다. 이리하여 "'일상적인 삶'을 '나날이 새롭고 또 나날이 새로운'(『대학』) 생기와 놀라움이 가득한 생활로 전환시키는 계기를 주는 책"이다. 이런 생기와 놀라움에 충만한 일상적 삶을 발견하고 호흡함으로써 흔연히 기쁜 단계에 들어서고, 또 남들과 그 기쁨을 나누는 즐거운 단계로 나아가고, 그후 남의 눈길과 나의 존재성조차 거리를 두고 객관화해 보고, 급기야 나의 길에 신성이 깃들인 양 묵묵히 살아가는 그런 삶을 기약하는 것이다.
저자는 위와 같이 『논어』 다시 읽기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현재를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인간다운 삶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동시대인들에게 이 책은 새로운 필독서가 것이다.
경희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다산 정약용의 정치사상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유도회한문연수원에서 권우 홍찬유 선생과 한학의 원로들로부터 한문과 고전독법을 배웠다. 한국사상사연구소에서 연구원을 지냈고, 지금은 영산대학교의 자유전공학부 교수로 재직중이다. 저서로는 『논어, 사람의 길을 열다』 『한글세대가 본 논어』(전2권), 산문집『풀숲을 쳐 뱀을 놀라게 하다』가 있고 『고전의 향연』『글쓰기의 최소원칙』 등의 공저가 있다. 스스로 동양의 여러 사상들을 오늘날의 시각으로 풀고 해설하는 일을 과업으로 여기고 있다. 지금은 『맹자』에 대한 주석 작업에 시간을 쏟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