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비자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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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ation Date 2002/09/30
Pages/Weight/Size 159*232*35mm
ISBN 9788935654017
Categories 인문 > 동양철학
Description
동양과 서양의 철학사상, 정치사상을 비교할 때 자주 거론되는 인물이 바로 한비와 마키아벨리이다. 그것은 근대지향적 통치철학이라 할 심리조작의 성격이 공통성을 띠기 때문이다. 두 사상가 모두 통치공학적 차원의 냉철한 인간 이해와 심층적 분석을 통해 현실추동적 종치철학을 전개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책은 성균관대에서 정년 퇴임한 이운구 교수에 의하여 약 3년에 걸쳐 국내 처음으로 제대로 완역된 최초의 정본이라 할 수 있다. 특히 국내 동양철학이 주로 유가철학과 도가철학 분야에 집중되어 한비자, 순자, 묵자, 열자를 비롯한 제자학(諸子學) 분야 연구가 취약한 상황에서 국내 제자학 연구의 선도적 역할을 해왔던 연구자에 의해 번역되었다는 데 그 의의가 크다.
Contents
1권

- 현명한 군주는 도덕보다 법을 앞세운다

1. 초진견(初秦見)
2. 존한(存韓)
3. 난언(難言)
4. 애신(愛臣)
5. 주도(主道)
6. 유도(有道)
7. 이병(二柄)
8. 양권(揚權)
9. 팔간(八姦)
10. 십과(十過)
11. 고분(孤憤)
12. 세난(說難)
13. 화씨(和氏)
14. 간겁시신(姦劫弑臣)
15. 망징(亡徵)
16. 삼수(三守)
17. 비내(備內)
18. 남면(南面)
19. 식사(飾邪)
20. 해로(解老)
21. 유로(喩老)
22. 설림 상(說林上)
23. 설림 하(說林下)
24. 관행(觀行)
25. 안위(安危)
26. 수도(守道)
27. 용인(用人)
28. 공명(功名)
29. 대체(大體)
30. 내저설 상(內儲說上) 칠술(七術)
31. 내저설 하(內儲說下) 육미(六微)

2권

32. 외저설 좌상(外儲說左上)
33. 외저설 좌하(外儲說左下)
34. 외저설 우상(外儲說右上)
35. 외저설 우하(外儲說右下)
36. 난일(難一)
37. 난이(難二)
38. 난삼(難三)
39. 난사(難四)
40. 난세(難勢)
41. 문변(問辯)
42. 문전(問田)
43. 정법(定法)
44. 설의(說疑)
45. 궤사(詭使)
46. 육반(六反)
47. 팔설(八說)
48. 팔경(八經)
49. 오두(五竇)
50. 현학(顯學)
51. 충효(忠孝)
52. 인주(人主)
53. 칙령(飭令)
54. 심도(心度)
55. 제분(制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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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한비,이운구
전국시대 말기 한(韓)나라 출신으로 기원전 약 280년경 태어나 233년 세상을 떠났다. 원래 이름은 ‘한비’로 그의 이름을 높여 부른 것이 ‘한비자’이다. 그는 한나라 왕의 아들로 어머니는 후궁이었다.
한비자는 말을 더듬고 말을 잘 꾸미지 못했지만, 재주와 생각이 남다르고 글을 잘 써 중국 법가 학파를 대표하는 이름난 사상가가 되었다. 그의 법가 사상은 전국시대의 혼란과 한 나라의 어려운 처지 안에서 발전했다. 약한 나라를 구하는 방법은 오직 엄한 법으로 백성들을 다스려 나라의 힘을 한 길로 동원함으로써 부강하게 되는 것뿐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의 글은 한나라의 군주에게는 주목받지 못하였으나 진왕만은 한비자의 가치를 제대로 알아보았다. 진시황이 진왕이던 시절, 한비자의 저술을 읽고는 “이 사람을 한번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고 감탄을 연발했다. 한을 공격하여 실제로 한비자를 만난 진왕은 자신의 통일 대업에 한비자의 도움을 얻고 싶어 했으나 그를 완전히 믿지 못했다. 그러다 진나라의 재상으로 있던 이사의 모함을 받자 마음이 돌아서 한비자에게 사약을 보내고 만다.
사마천은 한비자의 죽음을 두고 “세난(說難, 유세와 설득의 어려움) 같은 훌륭한 글을 썼으면서도 자신은 그로 인한 재앙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했다. 진왕은 한비자를 죽였으나 진시황이 된 뒤 한비자의 법술 이론에 큰 영향을 받고, 천하 통치의 이론적인 버팀목으로 활용했다.
전국시대 말기 한(韓)나라 출신으로 기원전 약 280년경 태어나 233년 세상을 떠났다. 원래 이름은 ‘한비’로 그의 이름을 높여 부른 것이 ‘한비자’이다. 그는 한나라 왕의 아들로 어머니는 후궁이었다.
한비자는 말을 더듬고 말을 잘 꾸미지 못했지만, 재주와 생각이 남다르고 글을 잘 써 중국 법가 학파를 대표하는 이름난 사상가가 되었다. 그의 법가 사상은 전국시대의 혼란과 한 나라의 어려운 처지 안에서 발전했다. 약한 나라를 구하는 방법은 오직 엄한 법으로 백성들을 다스려 나라의 힘을 한 길로 동원함으로써 부강하게 되는 것뿐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의 글은 한나라의 군주에게는 주목받지 못하였으나 진왕만은 한비자의 가치를 제대로 알아보았다. 진시황이 진왕이던 시절, 한비자의 저술을 읽고는 “이 사람을 한번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고 감탄을 연발했다. 한을 공격하여 실제로 한비자를 만난 진왕은 자신의 통일 대업에 한비자의 도움을 얻고 싶어 했으나 그를 완전히 믿지 못했다. 그러다 진나라의 재상으로 있던 이사의 모함을 받자 마음이 돌아서 한비자에게 사약을 보내고 만다.
사마천은 한비자의 죽음을 두고 “세난(說難, 유세와 설득의 어려움) 같은 훌륭한 글을 썼으면서도 자신은 그로 인한 재앙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했다. 진왕은 한비자를 죽였으나 진시황이 된 뒤 한비자의 법술 이론에 큰 영향을 받고, 천하 통치의 이론적인 버팀목으로 활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