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숙은 우리나라 여성 가운데 경제학을 전공한 첫 번째 인물이다. 보통사람은 학교 문턱도 가보기 어렵던 시절에 그는 중국 유학을 거쳐 스웨덴까지 가서 경제학을 공부하였다. 그가 스웨덴을 택한 것은 당시 세계 여성운동의 지도자 엘렌 케이를 만나고 사회과학이 발달한 나라에서 학문을 연마해 나라와 겨레에 기여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고학해가며 학위를 취득하고 귀국한 지 6개월 만에 요절하고 만다. 5개국어에 능통하고 국제적 네트워크를 갖춘 재원이었지만, 식민지 조선은 여성인 그에게 일할 기회조차 제공하지 못했다.
이 책은 한 시대 역사의 격랑 속을 치열하게 고민하며 산 한 선각자를 조명하기 위한 기획이다. 그의 생각을 가감 없이 엿볼 수 있는 것은 오직 그가 남긴 기록이다. 이 책에는 최영숙이 쓴 모든 글을 한데 모았다. 기사 속에 들어 있는 글이라 할지라도 최영숙의 육성이 담긴 것이라면 추려내었다. 최영숙의 삶과 죽음을 다룬 주요 잡지 기사도 모두 모았다. 비록 흥미 본위의 글이라 할지라도 최영숙을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서다.
최영숙의 글 가운데 가장 중심이 되는 것은 인도 기행문이다. 그는 마하트마 간디와 사로지니 나이두 두 사람을 만나기 위해 천신만고 끝에 인도를 찾았다. 그에게 인도는 조선 문제의 해법을 찾을 수 있는 출구였다. 귀국길에 인도뿐 아니라 유럽 각지를 두루 둘러 본 것도 학문 연구를 넘어 ‘실지적 생의 싸움을 실험’해야 한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이 책은 일제강점기의 역사를 발굴하고 새로 쓰기 위한 ‘일제강점기 새로읽기’ 시리즈의 하나다.
Contents
1부 인도 유람
그리운 옛날 학창시대-스웨덴 대학생 생활
인도 유람
간디와 나이두 회견기
2부 여성들이 자유로운 세상을
김산 형, 아뢰옵니다
여성들이 자유로운 세상을
귀국 소감과 포부
역경에 처한 조선 여성을 위해 일할 결심으로
대중의 단결
스웨덴 가정의 감복할 시간경제
영구성과 단결 위해 경제생활의 토대를 구비하자
어떠한 경제학이 정당한가
금강산이 보고 싶다
외국 여성의 삶과 여성 문제
3부 어여쁜 처녀여!
최영숙 일기
4부 청춘에 요절한 최영숙 애사哀史
스웨덴에서 사회학을 배우려고 하얼빈 시를 통과한 최영숙 양
구십춘광九十春光을 등지고
청춘에 요절한 최영숙 애사哀史
경제학사 최영숙 여사와 인도 청년과의 연애 관계의 진상
인도 청년과 가약 맺은 채 세상 떠난 슬픈 사랑
애도哀悼 최영숙 씨
최영숙 지하 방문기, 명부행 열차를 추격하면서
Author
최영숙
5개 국어에 능통하고 우리나라 여성 가운데 최초로 경제학을 공부한 재원. 이화여자고등보통학교 재학시 3·1운동을 겪으며 독립운동의 길을 걷기로 결심한다. 중국에 유학해 도산 안창호 등의 가르침을 받던 중 인생행로의 사표가 된 엘렌 케이의 사상에 심취해 다시 스웨덴 유학길에 오른다. 1931년 스웨덴 스톡홀름 대학(경제학사)을 졸업하였다. 귀국길에 세계정세를 살피고 식민지 조선 문제의 해법을 찾을 수 있는 출구라고 생각한 인도를 방문해 인도 독립운동의 지도자 마하트마 간디, 사로지니 나이두와 교분을 쌓는다.
최영숙은 여성들이 차별 없이 살 수 있는 사회를 꿈꾸었다. 경제운동과 노동운동을 펼치려던 그의 관심의 중심은 노동여성이었다. 언론에 활발히 글을 발표하고 여자소비조합 운영, 공민독본 편찬 등에 애쓰던 중 귀국 6개월 만에 27살의 짧은 생으로 요절함으로써 역사 속에 묻히고 만다.
5개 국어에 능통하고 우리나라 여성 가운데 최초로 경제학을 공부한 재원. 이화여자고등보통학교 재학시 3·1운동을 겪으며 독립운동의 길을 걷기로 결심한다. 중국에 유학해 도산 안창호 등의 가르침을 받던 중 인생행로의 사표가 된 엘렌 케이의 사상에 심취해 다시 스웨덴 유학길에 오른다. 1931년 스웨덴 스톡홀름 대학(경제학사)을 졸업하였다. 귀국길에 세계정세를 살피고 식민지 조선 문제의 해법을 찾을 수 있는 출구라고 생각한 인도를 방문해 인도 독립운동의 지도자 마하트마 간디, 사로지니 나이두와 교분을 쌓는다.
최영숙은 여성들이 차별 없이 살 수 있는 사회를 꿈꾸었다. 경제운동과 노동운동을 펼치려던 그의 관심의 중심은 노동여성이었다. 언론에 활발히 글을 발표하고 여자소비조합 운영, 공민독본 편찬 등에 애쓰던 중 귀국 6개월 만에 27살의 짧은 생으로 요절함으로써 역사 속에 묻히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