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이승복기념관 관장은 6급 교육공무원이며 7급 교육 공무원과 단 두 사람이 기념관의 행정과 전시 연구 업무를 수행한다. 나머지 6명은 기능직으로 시설관리를 하고 있고 청원경찰 3명이 근무함에 따라 총 11명이 이승복기념관을 지키는 중이다.
국민의 세금으로 국가 정체성을 부정하는 듯한 5.18기념관과 4.3기념관에 연간 수십억 원씩 지원하면서 국가 정체성을 수호하는 기관은 1억 90만 원을 하달해 고사(枯死)시키는 현 정권을 두고 과연 대한민국의 정권이라 할 수 있을까.
이승복 어린이의 진실을 향한 투철한 희생은 한때나마 대한민국을 하나로 단합시키는 역할을 했다. 그가 공비와 맞닥뜨리기 4일 전인 1968년 12월 5일, 박정희 대통령은 국민을 단합시키기 위한 ‘국민교육헌장’을 공표했다. 별개의 두 사건이 실상 1969년 이후 화학적으로 결합하여 대한민국 발전을 위한 시너지를 만들었다는 점은 분명하다. 대통령에 의한 국가 주도형 국민단합(국민교육헌장)이 ‘강한 국가’를 지향했고, ‘이승복 사건’은 국민들로 하여금 적극적 반공주의를 선택케 함으로써 ‘강한 사회’를 지향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연세대 류석춘 교수의 학설대로 ‘강한 국가’와 ‘강한 사회’의 상승작용이 ‘마을과 국가(새마을 운동)’ 그리고 ‘기업과 국가(산업정책)’의 관계로 결실을 맺어 ‘한강의 기적’을 이뤄낸 것이다. ‘이승복 사건’ 이후 국민들은 비로소 국가와 공동체에 대한 도덕적 의무감을 체득하기 시작했다.”고 강조한다.
Contents
▶ 목차
프롤로그 · 7
1부 김일성의 도발, 무장공비 김익풍
1장 김익풍 중위 · 12
2장 박정희와 김일성 · 18
3장 북한 체제 · 30
4장 강인덕 북한분석국 과장 · 42
5장 공화국 전투영웅의 탄생 · 50
6장 청와대 기습사건 · 60
7장 한반도의 초한지 · 81
8장 침투준비 · 86
9장 작전개시 · 98
2부 인민전쟁의 시작
1장 바다에서 · 114
2장 남조선 땅으로 · 128
3장 고수동의 비극 · 135
4장 공작과 포위 · 159
5장 다시 평양으로 · 176
3부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1장 승복이 가족 · 206
2장 운명의 그날 · 216
3장 특종보도 · 235
4부 이승복 정신을 지켜내지 못한 이야기
1장 대한민국의 화랑 관창 · 244
2장 국가 정체성을 지키는 기념관 현황 · 248
에필로그 · 252
후기 · 2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