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산망 공격, 정보 해킹, 지령 전달, 댓글을 통한 여론조작, 체제선전 등 광범위한 영역에서 진행되고 있는 북한의 대남 사이버 공작을 우리 주변의 생생한 사례를 들어 흥미진진하게 설명하고 있다. 저자인 하태경은 대학시절, 친북 학생운동권의 배후 조종자 역할을 하기도 했으나, 90년대 후반 이후 북한의 생생한 현실을 접한 뒤, 북한인권운동가로 변신했다. 그 후 최초의 대북 민간 라디오방송을 이끌었으며 최근에는 한 방송에 출연, 한미 연합 훈련에 대한 북한의 도발은 오히려 사이버 공간에서 발생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그리고 실제로 이 인터뷰 이틀 후 정체를 알 수 없는 세력에 의해 방송사와 금융권에 대한 3ㆍ20 사이버 테러가 발생했다. 남과 북의 대립은 휴전 이후 지금까지 사실상 미디어전쟁이었다고 주장하는 저자는 자신이 직접 겪은 다양한 경험담을 통해 남북 미디어전쟁의 치열한 이면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Contents
1부 라디오로 혁명을 유도한 북한
북한 대남방송의 기원
방송 키즈(Kids)가 운동권을 석권하다!
80년대의 나꼼수, 한민전
한민전 요원, 오길남 박사와 통영의 딸 구출운동
부부간첩단을 안기부로 오해하다
일심회 사건
난수표란 무엇인가?
2부 대남공작의 신 미디어
라디오에서 인터넷으로
스테가노그라피(Steganography)
북한의 댓글 부대
트위터 부대와 UCC
북한 특권층의 Facebook 특권
3부 북한의 대남 사이버테러
북한이 사이버 테러에 나선 이유
북한의 사이버 테러부대
사이버 테러 요원은 어떻게 양성되나?
사이버 테러와 김정은
북한이 한국에 심어 둔 좀비PC 20만대
우리의 사이버 대응체계
농협 전산망사건의 배후, 북한
북한의 사이버 전사로부터 e메일을 받다
북한은 왜? 안철수 연구소에 소스코드를 요구했나?
사이버 민방위 훈련을 창설하자
북한 IP문제에 대한 한국의 무지
GPS 교란 전파와 EMP 공격
북한의 사이버 남침 주요 사례
4부 북한을 휘젓는 한류
한국의 영상물, 어떻게 유통되나?
연기력은 이범수, 패션은 현빈!
인민군대까지 스며든 한류
한국TV 때문에 집값이 오르다
5부 북한의 매체 탄압
북한의 이색 직업 : 라디오 봉인 풀기 전문가
전기 내리고 단속하는 이유
스텔스 USB
요덕 수용소에서 죽은 북한 언론인
6부 북한 미디어의 특징
북한에는 ‘생방송’이 없다
북한의 언론인은 신랑감 몇 순위?
북한에도 언론고시가 있을까?
북한 아나운서의 독특한 억양
북한에도 아나테이너(anatainer)가 있다.
북한 주민들만 듣는 ‘제3방송’
남한 드라마에 관심 많은 김정일
김정일만 볼 수 있는 외국뉴스, “백지통신”
김정일 사진 촬영시의 원칙
적들에게 우리 소식을 알리지 마라!
북한에는 아직도 금지곡이 있다
7부 북한의 휴대폰과 인터넷
북한 핸드폰의 시작과 용천역 폭발사고
오라스콤과 북한의 휴대폰
북한에서 카카오톡도 가능하다
북한의 인터넷, 〈광명〉
손으로 쓰는 사회
북한에도 PC방이 있나?
평양에도 아이패드가?
김정은은 인터넷을 허(許)할까?
8부 통일시대를 준비하는 대북한 미디어 전략
‘방아쇠 없는 무기’ 삐라의 진화
라디오는 생명과 같다
디지털TV전환은 북한 주민들에게 재앙
북한의 변화를 위한 최고의 무기, 대북방송
북한의 지하 기자들
북한 소식의 외부 전파
北주민에게 더 많은 정보를!
남북방송 전면 개방 제의하자
부록1 ● 미디어에 의한 사회 변혁 사례
부록2 ● 대북 라디오방송 현황
Author
하태경
한국이 낳은 세계적 글로벌 인권운동가의 한사람이다. 고교시절 내내 모든 수학시험에서 만점을 맞았을 정도로 기초과학에 재능을 보였던 저자는 노벨상을 받겠다는 꿈을 안고 서울대 물리학과에 입학했다. 그러나 80년대 후반, 우리사회의 현실은 그를 평범한 학생으로 살게 놔두지 않았다. 김세진 이재호 선배의 죽음을 계기로 운동권 학생이 된 하태경은 두 차례나 감옥을 오가면서 전대협 조국통일위원회 간부로 활동하는 등 이른바 종북 좌파 학생운동의 배후조종자가 된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 글로벌 인권운동가의 한사람이다. 고교시절 내내 모든 수학시험에서 만점을 맞았을 정도로 기초과학에 재능을 보였던 저자는 노벨상을 받겠다는 꿈을 안고 서울대 물리학과에 입학했다. 그러나 80년대 후반, 우리사회의 현실은 그를 평범한 학생으로 살게 놔두지 않았다. 김세진 이재호 선배의 죽음을 계기로 운동권 학생이 된 하태경은 두 차례나 감옥을 오가면서 전대협 조국통일위원회 간부로 활동하는 등 이른바 종북 좌파 학생운동의 배후조종자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