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올 팔월에 일흔일곱을 넘긴 이 씨가, 마지막이라 생각하며 떠난 인도 여행을 중심으로 그동안 다닌 배낭여행을 마무리하는 글입니다. 인도는 그가 처음 배낭여행을 시작했던 곳이고, 여러 사연과 추억이 엉켜 있는 나라이기에, 끝을 맺는 의식을 치르는 곳도 당연히 인도일 수밖에 없습니다.
글쓴이는, 이 책에서 여행이란 무엇인지, 여행은 왜 하는지, 나름대로 정리한 생각을 독자들과 공유해 보려 시도합니다. 여행자들은, 낯선 사람들과 만남, 다양한 문화 경험, 역사적 현장이나 유적지 순례, 익숙하지 않은 음식 체험 등을 통해 확장된 시야와 깊어진 사고, 다름에 대한 이해와 수용의 폭을 넓히게 됩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여행을, 익숙한 곳에서 멀리 떨어진 외로움 속에서 자신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돌아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로 여기기도 합니다. 존재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깊이 살펴보는 것은 괴롭고 힘든 일이지만, 성찰을 통해 정화의 과정에 이르기도 합니다. 또한 살날이 그리 많이 남지 않은 여정의 끝자락에서, 머지않아 마주할 죽음을 친구처럼 편안한 마음으로 맞을 준비이기도 합니다.
바라나시 가트에 앉아 화장터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바라보고 있으면, 늘 같은 생각이 떠오릅니다.
어떻게 하면 잘 돌아갈 수 있을까요?
Contents
책머리에 - 왜 여행을 하세요?
생각하며 여행하기
첫 번째 배낭여행 - 인도
작은 인연도 소중하다
여섯 번째 인도 여행
다시 찾은 콜카타
목숨을 걸고 걷기에 도전하다
인도에서 기차여행 하기
기차표 예매하기
배워야 산다!
힌두인의 성지 - 바라나시
바라나시 가트에서 놀기
갠지스강 해맞이
마음이 평화로운 곳 - 산치
이곳저곳 둘러보기
야한 사원 도시 - 카주라호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무덤 - 타지마할
삶이 곧 메시지다!
여행의 즐거움
시간이 머무는 곳 - 카트만두
죽기 전에
안나푸르나가 품은 도시 - 포카라
붓다 탄생지 - 룸비니
나는 무엇인가(What am I)?
기적을 만드는 사람들
티베탄 콜로니
인도에 머무는 마지막 날
책 끄트머리에 - 사람은 살던 대로 죽는다
Author
이 씨
삶과 여행 이야기, 《여정(旅程)의 끝자락에서》는 이 씨가 썼습니다. 우리글 띄어쓰기는 꽤 어렵습니다. ‘이씨’와 ‘이 씨’는 그 의미가 다릅니다. 차이를 단순하게 설명하면 전자는 무리, 후자는 개체를 뜻합니다. 이 씨는 강원도 외진 산골, 빈집 문간방 하나를 얻어 2년 넘게 산 적이 있습니다. 그는 처음 만나는 동네 분들에게 이 씨라고 인사를 했습니다. 마을 사람들 모두가 그를 이씨라 여기기 시작하면서 다소 서먹했던 거리가 좁혀지고, 오래전부터 같이 살던 사람들처럼 스스럼없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씨 속에서 이 씨로 살아가는 것은 그리 만만하지 않습니다. 쉽고 편안함이 삶의 전부가 아닐뿐더러, 무리에 매몰되면 개체의 존재가 무의미해지기도 합니다. 조화를 이루는 것은 주체가 무엇이든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이 씨는 문예지를 통해 필명을 얻은 적이 있지만 글솜씨도, 치열함도 적어 소임을 다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름은커녕 그 사실을 말하는 것조차 민망합니다. 그러면서도 글쓰기를 이어가는 것은 그게 이 씨로 사는 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이 소설은 이 씨가 썼다. 우리글 띄어쓰기는 꽤 까다롭다. 한 예로 ‘이씨’와 ‘이 씨’는 의미가 다르다. 그 차이를 단순하게 정의하면 전자는 무리, 후자는 개체다. 이씨 속에서 이 씨로 살아가는 것은 그리 만만하지 않다. 쉽고 편안함이 추구하는 삶의 전부가 아닐뿐더러, 무리에 매몰되면 개체의 존재가 무의미해지기도 한다. 조화를 이루는 일은 주체가 무엇이든 쉽지 않은 일이다. 이 씨는 문예지를 통해 필명을 얻은 적이 있지만 글솜씨도, 치열함도 적어 소임을 다하지 못했다. 그래서 이름은커녕 그 사실을 말하는 것조차 민망하다. 그러면서도 글쓰기를 이어 가는 것은 그게 이 씨로 사는 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삶과 여행 이야기, 《여정(旅程)의 끝자락에서》는 이 씨가 썼습니다. 우리글 띄어쓰기는 꽤 어렵습니다. ‘이씨’와 ‘이 씨’는 그 의미가 다릅니다. 차이를 단순하게 설명하면 전자는 무리, 후자는 개체를 뜻합니다. 이 씨는 강원도 외진 산골, 빈집 문간방 하나를 얻어 2년 넘게 산 적이 있습니다. 그는 처음 만나는 동네 분들에게 이 씨라고 인사를 했습니다. 마을 사람들 모두가 그를 이씨라 여기기 시작하면서 다소 서먹했던 거리가 좁혀지고, 오래전부터 같이 살던 사람들처럼 스스럼없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씨 속에서 이 씨로 살아가는 것은 그리 만만하지 않습니다. 쉽고 편안함이 삶의 전부가 아닐뿐더러, 무리에 매몰되면 개체의 존재가 무의미해지기도 합니다. 조화를 이루는 것은 주체가 무엇이든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이 씨는 문예지를 통해 필명을 얻은 적이 있지만 글솜씨도, 치열함도 적어 소임을 다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름은커녕 그 사실을 말하는 것조차 민망합니다. 그러면서도 글쓰기를 이어가는 것은 그게 이 씨로 사는 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이 소설은 이 씨가 썼다. 우리글 띄어쓰기는 꽤 까다롭다. 한 예로 ‘이씨’와 ‘이 씨’는 의미가 다르다. 그 차이를 단순하게 정의하면 전자는 무리, 후자는 개체다. 이씨 속에서 이 씨로 살아가는 것은 그리 만만하지 않다. 쉽고 편안함이 추구하는 삶의 전부가 아닐뿐더러, 무리에 매몰되면 개체의 존재가 무의미해지기도 한다. 조화를 이루는 일은 주체가 무엇이든 쉽지 않은 일이다. 이 씨는 문예지를 통해 필명을 얻은 적이 있지만 글솜씨도, 치열함도 적어 소임을 다하지 못했다. 그래서 이름은커녕 그 사실을 말하는 것조차 민망하다. 그러면서도 글쓰기를 이어 가는 것은 그게 이 씨로 사는 한 방법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