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80대의 은퇴 해녀가 불면증을 호소하며 굿을 청했다. 심방(제주의 무격)들은 그 원인을 선앙이나 일월조상에서 찾았다. 하지만 이 굿을 보던 한 젊은 연구자는 거기에 숨겨진 다른 원인을 더듬어 보았다. ‘할머니의 불면증은 누군가의 어머니, 아내, 제주 여성이기에 강요당한 무엇과 닿아 있는 게 아닐까.’
이 책은 바로 거기에서 시작되었다. 이제는 몸이 아파 바다에도 들지 못하는 늙은 해녀할망이 이제야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게 되었을 때, 채 내뱉지 못한 수많은 이야기들이 쌓여 마음의 병이 되었다는 걸 짐작하게 된 순간부터 말이다.
“은퇴 해녀의 불면증”은 저자가 굿청에서 우연히 만난 은퇴 해녀처럼, 온 생을 바다에 뛰어들어 가족에게 바쳤던 해녀할망들이 미처 하지 못했던 이야기, 그 사연을 묻고 듣고 기록한 책이다. 각각의 개인사를 말하지만 그 이야기는 근대 제주의 모습과 마을의 원풍경 속에서 하나의 이야기로 수렴되고, 마침내 우리 어머니의 이야기와 닮아 있다는 걸 알게 된다.
1부에서는 제주의 부속섬인 우도 해녀 11명의 인터뷰를 실었다. 해녀가 된 과정과 물질 작업, 출가 물질 등을 통해 해녀로서의 일생을 들려주고, 그 삶으로 이룬 것과 못다 한 이야기를 전한다. 2부에서는 제주의 동쪽 마을 해녀 8명의 인터뷰를 통해 해녀 공동체의 신앙을 살펴보았다. 3부에서는 해녀들이 삶을 바친 바다밭, 그중에서도 온평리 바다밭을 통해 해녀할망들이 보낸 세월만큼이나 변해버린 바다의 모습을 들여다보았다.
책에는 제주해녀이기에 겪어야 했던 희로애락이 담겨 있다. 기쁨도 슬픔도 같이 나누며 물숨의 세월을 건너온 그들은, 자신들보다 더 늙어버린 바다를 보며 한숨을 짓는다. 저자는 존경과 애정을 담아 이 책을 불면증의 처방전으로 내놓고 있다. 박정근 작가의 영혼 어린 사진도 힘을 더한다. 이 책은 한국출판산업진흥원의 2021년도 ‘중소출판사 출판콘텐츠 창작지원 사업’ 선정작으로 발간되었다.
Contents
제1부 우도직녀가
며느리가 말려도 물에만 들고 싶은 마음 (비양동 정금주)_22
마흔 넘어 다시 배운 물질 (하우목동 고우혜)_31
일본 가서 찾아온 〈해녀의 노래〉 4절 (동천진동 김춘산)_40
물질 잘하는 것, 그것으로 이름났던 수에꼬 (하고수동 고계모)_48
오동나무에 걸려 가도 오도 못 하는 신세 (상고수동 김을생)_56
넙미역 번난지 줍고, 물질해서 오 남매 공부시킨 어머니 (영일동 양순자)_64
삼불도조상에 정성 들여 지킨 가족 (중앙동 송선옥)_72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 강관순과 〈해녀의 노래〉 (전흘동 강길여)_80
남편 없어도 시부모님, 어머님 병간호하며 살아온 22년 (서천진동 김용산)_89
남편은 잠수배 선장, 나는 해녀로 다녀온 육지 물질 (주흥동 한연옥)_97
풍선에 실어온 대마도 삼나무로 지은 100년 역사의 집 (삼양동 고매화)_106
제2부 바다에 바친 삶과 신앙
물질 안 해도 된다고 해서 시집온 조천 (조천리 김영자)_116
무엇보다 힘든 천초 작업 (김녕리 강창화)_130
썰물은 동드레 가고 들물은 서드레 오주 (행원리 장군열)_150
새로 시작하는 해녀들을 챙기는 것도 우리의 일 (한동리 허춘자)_164
해녀 목숨 구하고, 병을 얻어 돌아온 육지물질 (평대리 신승희)_177
다시 일어서게 한 친정어머니의 욕바가지 (평대리 김옥선)_191
센 물에도 뛰어들던 세화 해녀특공대 (세화리 이복녀)_206
7개 동네별로 소라 잡는 하도리 (하도리 임옥희)_217
경남 진주에서 고전문학을 전공하다가 굿 공부를 하겠다고 제주도로 왔지만, 정작 공부는 않고 사람들과 잘 노는 궁리를 하며 신당과 제주굿, 무형문화재를 주제로 전시, 축제, 강좌 등을 진행했다. 요즘은 제주 사람들이 살아온 이야기 듣는 일을 제일 큰 재미로 삼고 있다. 어머니, 할머니, 동네 삼춘까지 모두가 연결된 여성들의 연대와 그 연대 안에서 전달되는 삶의 지혜와 생존기술을 발견하는 것. 오늘의 자파리이자 숙제이다.
경상국립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강사(2006-2013), 제주전통문화연구소 연구실장(2009-2016), 제주문화예술재단 무형문화유산팀 팀장(2017-2018)을 거쳐 제주섬문화연구소 연구실장(2019-현재)으로 활동하고 있다. 『제주신당조사: 제주시·서귀포시편『(2008-2009)와 『제주해녀문화총서』 발간 사업(2019, 2021)의 연구원으로 참여했으며, 논문으로 「제주심방의 입무의례 연구」(경상대학교 석사논문, 2005)가 있다.
경남 진주에서 고전문학을 전공하다가 굿 공부를 하겠다고 제주도로 왔지만, 정작 공부는 않고 사람들과 잘 노는 궁리를 하며 신당과 제주굿, 무형문화재를 주제로 전시, 축제, 강좌 등을 진행했다. 요즘은 제주 사람들이 살아온 이야기 듣는 일을 제일 큰 재미로 삼고 있다. 어머니, 할머니, 동네 삼춘까지 모두가 연결된 여성들의 연대와 그 연대 안에서 전달되는 삶의 지혜와 생존기술을 발견하는 것. 오늘의 자파리이자 숙제이다.
경상국립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강사(2006-2013), 제주전통문화연구소 연구실장(2009-2016), 제주문화예술재단 무형문화유산팀 팀장(2017-2018)을 거쳐 제주섬문화연구소 연구실장(2019-현재)으로 활동하고 있다. 『제주신당조사: 제주시·서귀포시편『(2008-2009)와 『제주해녀문화총서』 발간 사업(2019, 2021)의 연구원으로 참여했으며, 논문으로 「제주심방의 입무의례 연구」(경상대학교 석사논문, 2005)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