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읽는 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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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ation Date 2016/07/11
Pages/Weight/Size 152*225*30mm
ISBN 9788997132966
Categories 인문 > 동양철학
Description
죽기 전에 한 번은 읽어야 할 동양고전,
쉽고 친근한 풀이로 만나자!


14억의 인구와 5천 년의 역사를 가진 나라, 중국을 대표하는 인물을 단 한 명만 꼽으라면 단연 ‘공자’일 것이다. 공자는 약 2천 5백 년 전 춘추시대 말기에 태어났다. 《논어》는 공자가 세상을 떠난 이후 공자의 제자와 제자의 제자들이 스승의 말씀과 행동을 기록한 것이다. 《논어》의 저자는 정확히 말하면 ‘공자제자협회’라고 할 수 있다. 윤리, 도덕, 정치, 교육 등에 대한 공자와 제자의 언행이 담긴 《논어》는 ‘동양학’이 부각될 때도, ‘인문학’이 중시될 때도 언제나 첫손가락에 꼽히는 주요 고전이다. 따라서 고전 읽기를 시작한다면 그 시작은 마땅히 《논어》여야 한다.

동양고전은 어렵고 재미없다는 선입견을 가진 독자들을 위해 기획된 행성B의 [고전 친숙하게 읽기 시리즈] 첫 번째 권인 [처음 읽는 논어]는 그야말로 《논어》를 처음 접하는 독자들을 위한 책이다. 고전은 고루하고 예스럽다는 편견을 깨고, 현대적인 어투를 사용해 최대한 친근하게 읽을 수 있도록 했다. 한자어에 익숙하지 않은 젊은 세대들이 고리타분하고 복잡하게 느끼지 않게 하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그다지 유용하지 않은 모든 내용을 싣기보다는 꼭 새겨야 할 문장을 추려 더 친절하게 해설해주려고 했다. 고전은 긴 시간이 흘러도 언제나 우리 삶에 중요한 메시지를 던져준다. 보다 멀리 인생을 바라보고 싶을 때, 삶에 위로와 통찰이 필요할 때, 이 책이 큰 용기와 지혜의 선물이 될 것이다.
Contents
옮긴이의 말
제1편. 학이(學而)
제2편. 위정(爲政)
제3편. 팔일(八佾)
제4편. 이인(里仁)
제5편. 공야장(公冶長)
제6편. 옹야(雍也)
제7편. 술이(述而)
제8편. 태백(泰伯)
제9편. 자한(子罕)
제10편. 향당(鄕黨)
제11편. 선진(先進)
제12편. 안연(顔淵)
제13편. 자로(子路)
제14편. 헌문(憲問)
제15편. 위령공(衛靈公)
제16편. 계씨(季氏)
제17편. 양화(陽貨)
제18편. 미자(微子)
제19편. 자장(子張)
제20편. 요왈(堯曰)
Author
공자,홍승직
기원전 551년 노(魯)나라 창평향(昌平鄕) 추읍(?邑)에서 아버지 숙양홀(叔梁紇)과 어머니 안씨(顔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태어나면서부터 정수리가 움푹 들어가 둘레가 언덕처럼 솟아 있어 이름을 구(丘: 언 덕 구)라고 했다. 3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17살 때 어머니를 여의었으며, 19살 때 송나라 출신 여인과 혼인했다. 20살 때부터 계씨(季氏) 가문의 창고지기로 일했고 가축 사육일도 맡았지만 학문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48살 때 정치에서 물러나 본격적으로 제자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3년 뒤 양호가 망명하면서 중도(中都)를 다스리는 책임을 맡았고 다시 사공(司空) 벼슬과 대사구(大司寇) 벼슬을 지냈다. 기원전 497년 이후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다가 기원전 484년 노나라로 돌아왔다. 기원전 479년 73살 때 세상을 떠나 노나라 도성 북쪽 사수泗水(언덕)에 묻혔다.
기원전 551년 노(魯)나라 창평향(昌平鄕) 추읍(?邑)에서 아버지 숙양홀(叔梁紇)과 어머니 안씨(顔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태어나면서부터 정수리가 움푹 들어가 둘레가 언덕처럼 솟아 있어 이름을 구(丘: 언 덕 구)라고 했다. 3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17살 때 어머니를 여의었으며, 19살 때 송나라 출신 여인과 혼인했다. 20살 때부터 계씨(季氏) 가문의 창고지기로 일했고 가축 사육일도 맡았지만 학문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48살 때 정치에서 물러나 본격적으로 제자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3년 뒤 양호가 망명하면서 중도(中都)를 다스리는 책임을 맡았고 다시 사공(司空) 벼슬과 대사구(大司寇) 벼슬을 지냈다. 기원전 497년 이후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다가 기원전 484년 노나라로 돌아왔다. 기원전 479년 73살 때 세상을 떠나 노나라 도성 북쪽 사수泗水(언덕)에 묻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