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서학자인 박경미 교수(이화여대 기독교학과)가 ‘시대의 끝’에 대한 성찰로 독자들을 초대한다. “제국의 침략과 거기 결탁한 가신통치자들의 수탈, 그로 인해 하느님의 통치가 끊어지는 데 대한 예언자들의 분노와 심판의 선언. 이러한 것들이 성서의 세계를 가득 채우고 있다. 이처럼 삶을 파괴하는 것들에 맞서 환상가들은 옛 세계의 종말과 새로운 세계의 시작을 선언했다. 신구약 중간시대와 초기 기독교시대에 융성했던 묵시문학의 근저에 깔린 생각은 이러한 의미에서 ‘시대의 끝’에 대한 의식이었다.”
이 책 『시대의 끝에서』는 성서와 역사, 그리고 현재의 깊은 대화이며, 시대의 운명을 염려해 온 실천적인 학자의 이야기이다. 이 책에서 독자들이 다시 만나는 구약과 신약의 시대, 인물과 사건들은 박경미 교수의 탁월한 이야기를 통해 바로 지금 이 시대 우리의 모습,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과제들로 되살아난다. 그 과제들은 비단 당면한 정치적·경제적 위기만이 아니다. 우리가 애써 외면하고 있지만 사실은 근본적으로 우리 삶의 토대를 위협하고 있는 문명의 위기, 인류 생존의 위기로 나아간다. 위기에 대한 직시와 성찰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저자가 성서와 역사의 대화로 독자들을 초대하여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결국 이 용기와 희망에 관한 것이다.
“세계의 파멸을 선포했던 환상가들을 사로잡았던 것은 종말에 대한 어두운 환상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정말로 생각했던 것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었다. 악마적인 제국의 붕괴와 함께 도래할 새로운 세계에 대한 희망이었다. 구약성서와 유대교 문헌에서 종말론적 사고의 핵심은 하느님 없는 세상에 하느님이 오시는 것이었다. 그리고 신약성서 복음서들에서 예수는 임마누엘, 곧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하심’, 하느님의 현존으로 파악되었다. 또한 예수 자신은 삶과 가르침을 통해 하느님 오심의 현실을 보여주었다.”
이야기를 들려주는 저자의 목소리는 뜻밖에도 ‘논문’을 발표하는 학자의 음성이 아니라, 마치 유장한 서사시를 읊는 시인의 목소리처럼 들린다. 주제의 장중함과 어우러지는 문학적인 문체가 이 책의 매력을 드높인다.
Contents
들어가며 | 나와 성서
하느님의 나라, 동무들의 나라
농부/장인 그리스도
헤롯의 나라, 민중의 꿈
요한의 성령 이야기, 하느님의 사랑 이야기
로마제국과 바울의 평등사상
전승, 살아 있는 삶의 역사
네로의 세상, 지식인의 초상
시대의 끝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