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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을 말한다

국민은 왜 국정원 수술 동의서에 서명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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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ation Date 2013/09/30
Pages/Weight/Size 153*210*20mm
ISBN 9788994612768
Categories 사회 정치 > 정치/외교
Description
군사정권의 출범과 함께 신설된 국가정보원. 특히 지난 대선부터 현 정부 출범 이후 현재까지의 국정원은 한 국가의 정보수집기관(國情院)이 아닌 무소불위로 국가 정치를 주도하는 국정원(國政院)으로 변질되었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이 책은 야당의 초선 국회의원인 신경민이 국정원의 정치 횡행에 맞서 당의 국정원 선거개입 진상조사 특위 위원장으로서 겪은 270일간의 ‘항쟁’ 기록이다.

책은 크게 5부로 구성돼 있다.

제1부는 역삼동 오피스텔 댓글녀 사건, 제2부는 권은희 과장의 양심발언과 이후 국정조사 합의까지의 숨 가쁜 정국 상황, 제3부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발언을 공개하고 나선 국정원의 역습, 제4부는 우여곡절 끝에 이루어진 49일간의 국정조사와 그 비화, 제5부는 국정원을 국민의 정보기관으로 돌리기 위한 개혁방안이다.
관련자 녹취 기록, 공개‧비공개 문서, 인터뷰 등 현장기록과 자료를 바탕으로 역삼동 오피스텔에서 시청광장 앞 촛불행사까지 현 정부 1년 동안 국정원의 흑역사(黑歷史)를 망라한 다큐멘터리라고 할 수 있다.
Contents
머리말
역삼동 오피스텔 사건은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갑자기 일어났다

1부 대선을 좌우한 6일
운명의 날은 다가오고•투표 8일 전, 역삼동 오피스텔 급습 사건•김씨, ‘국정원 직원 아니다’ 부인•국정원, ‘김씨 국정원 직원 맞다’ 인정•‘셀프 감금’ 김씨와 43시간 대치 •김씨, ‘대선 댓글 단 적 없다’ 완강히 부인•현행범이냐 감금죄냐, 그것이 문제다•적반하장 국정원, ‘불법사찰·명예훼손’ 주장•민주당, 김씨·국정원을 공직선거법 위반혐의 등으로 고소·고발•김씨·새누리당, 민주당 관계자 11명 고소·고발•새누리당, 경찰청장에 신속 수사 요청•박근혜, 3차 TV토론서 국정원 사건으로 공격•역공당한 박근혜, ‘수사 중’ 연발•경찰, 밤 11시에 중간수사결과 전격 발표•국정원, 밤 11시 11분에 보도자료 내다•경찰, 새누리-국정원과 수사정보 공유?

2부 ‘국기문란’과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1월 3일 권은희 과장의 ‘폭탄발언’•민주당, ‘국정원 사건 진상조사위’ 구성•한겨레, 야당후보 비판’ 글 전격 공개•경찰, 수사책임자 권은희 과장 경질•여야, ‘국정원 사건’ 국정조사 합의•원세훈 원장 ‘지시·강조 말씀’ 폭로•시민단체, 원세훈 원장 검찰 고발•김용판, 두 차례 출판기념회 ‘빈축’•경찰, ‘속빈 강정’ 수사결과 발표•권은희, ‘수사 축소·은폐’ 의혹 제기•검찰, 원세훈 소환-국정원 압수수색•‘수사 축소·외압’ 의혹 사실로 확인•‘박원순 제압 문건’ 추가공개로 파문•검찰, 경찰의 ‘증거자료 인멸’ 확인•원세훈 영장 청구 놓고 검찰-법무부장관 대립•검찰, 국정원 사건 수사결과 발표•검찰 수사결과에 여야 모두 ‘불만’•사건 재구성 1, 12월 13~16일, 무슨 일 있었나•서울청, 15일 오후 분석팀에 ‘지침’ 하달•사건 재구성 2, 서울청의 ‘수사 은폐·축소’ 실상•경찰 심야발표로 ‘골든크로스’ 역전•민주당, 국정원 사건 ‘몸통’ 권영세 추가 폭로•시민단체, ‘국정원 사건, 국정조사 실시하라’•표창원 ‘아고라 청원’, 나흘 만에 10만 명 서명•국정원 직원 재정신청-‘축소·방해’ 경찰관 고발•국내외서 불타오른 각계의 ‘시국선언’•김한길 대표 ‘편지’와 국정조사 전격 합의

3부 NLL 논란과 NLL 작전
박영선, NLL은 국정원-새누리 시나리오•돌발 장애물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공방•그때그때 다른 보수의 NLL, 역대 정권의 입장은 어땠나•노무현, ‘NLL 안 건드리고 왔습니다’•대화록 공개로 역풍 맞은 새누리당• 대화록 유출, 언제 어떻게 시작됐나•첫 ‘외부 발설자’는 정문헌 의원• 대선 기간, MB의 연평도 돌발 방문 속내는?•NLL 논쟁 다시 불붙다•네 번째 국기문란은 황당무계한 NLL 작전•김무성 ‘셀프 고백’, 부산 유세에서 울부짖듯 ‘대화록’ 읽었다•권영세 폭탄•NLL 작전, 누가 언제 처음 기획했나

4부 국정조사 시작부터 끝까지
첩첩산중 국정조사, 사안마다 마찰•국정조사 특위, 개회 첫날부터 파행•진선미·김현 ‘제척’ 놓고 국조특위 파행•‘귀태’ 발언으로 국회 올 스톱•박범계, 댓글 사건과 NLL은 ‘일란성 쌍둥이’•새로운 증거의 보고, 127시간 CCTV 자료•국정원 기관보고 불발, 원세훈 뇌물죄로 기소•검찰, 대화록 열람 청구-기록원 압수수색•노무현 대화록 폐기 지시, 사실일까?•‘악마의 합의’와 파행 특위 재개•민주당, 천막당사로 장외투쟁 돌입•남재준 원장, ‘노무현 NLL 포기’•‘원판’은 증인채택, ‘김세’는 불발•‘원판김세’ 빠지면 ‘나쁜 마법사’ 빠진 해리포터•원판 청문회 불출석, 동행명령장 발부•원판 증인선서 거부, 국정조사 조롱•감추면 감출수록 진실은 흔적을 드러낼 것입니다!•원판 청문회는 철판 청문회•가림막 등장, 국정원 직원 얼굴은 국가기밀?•김씨, 커닝페이퍼로도 모자라 위증까지•권은희의 고군분투, 경찰의 집단 린치•표창원, ‘진실이 다수결은 아니다’•‘의인’ 권은희 과장 인상비평•아쉬움 남긴 국정조사, 특검 가나?•‘청영방송(靑營放送)’ 자임한 KBS와 MBC

5부 국정조사와 국정원 개혁방안
현행 국정조사제도의 한계와 개선방안_국정원 사건 국정조사의 한계점•원판 선서거부한 16일 청문회는 무효?•관련법 정비와 제도적 보완책 절실
무소불위 권력기관 국가정보원 개혁방안_국정원의 어두운 과거와 ‘정보관’•국정원의 특권과 견제장치 부재•국정원 개혁의 핵심과 개선방향

부록: 상황 일지
Author
신경민
1953년 8월 전주에서 태어났다. 지방지의 기자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기자가 된다. 1971년 서울대 문리과 대학 사회학과에 입학했다. 유신 정국으로 시국이 어수선해 학기 내내 학교를 다닌 기간은 두 학기에 불과하다. 대학시절의 대부분을 길거리와 문리대 앞 다방에서 공부를 했다. 1980년 가을 문화방송의 입사 시험에 합격했지만 신군부의 기자 해직 사태로 인해 입사 취소 직전까지 갔다가 다음해 초 입사했다. 사건, 국제, 법조, 교육, 북한, 외교 담당 기자와 외교, 사건 데스크를 거쳐 2000년 초 워싱턴 특파원으로 일하고 이후 부장과 부국장, 국장을 지냈다. 미국 의회 펠로우와 인디애나 대학교 언론 대학 펠로우로 각각 1년을 보낸다. 뉴스 진행을 선호하지 않았음에도 여러 차례 진행 경력을 쌓았다. 1986년부터 1년 정도 뉴스 데스크의 '보도국입니다' 코너를 맡아 새끼 앵커로 데뷔했고 1993년 초부터 1년 동안 '뉴스 데스크' 주말 엥커, 1998년 가을부터 열 달 동안 아침뉴스 앵커로 일했다. 2008년 3월 말부터 1년여 동안 '뉴스 데스크'의 앵커를 했다. 신경민의 특징인 클로징 멘트는 2007년 이후에 매일 이어졌다. 2009년 4월 13일 뉴스 데스크 앵커에서 교체된 뒤 보도국 선임 기자로 일하며 30년 8개월간 언론인으로 일했다. 2012년 1월 민주통합당 대변인을 거쳐 같은 해 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영등포을에 당선됐으며 2013년 5월 초선의원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최고위원에 선출됐다. 저서로는《신경민의 개념사회》《신경민, 클로징을 말하다》, 공저로는 《대학생이 된 당신을 위하여》등이 있다.
1953년 8월 전주에서 태어났다. 지방지의 기자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기자가 된다. 1971년 서울대 문리과 대학 사회학과에 입학했다. 유신 정국으로 시국이 어수선해 학기 내내 학교를 다닌 기간은 두 학기에 불과하다. 대학시절의 대부분을 길거리와 문리대 앞 다방에서 공부를 했다. 1980년 가을 문화방송의 입사 시험에 합격했지만 신군부의 기자 해직 사태로 인해 입사 취소 직전까지 갔다가 다음해 초 입사했다. 사건, 국제, 법조, 교육, 북한, 외교 담당 기자와 외교, 사건 데스크를 거쳐 2000년 초 워싱턴 특파원으로 일하고 이후 부장과 부국장, 국장을 지냈다. 미국 의회 펠로우와 인디애나 대학교 언론 대학 펠로우로 각각 1년을 보낸다. 뉴스 진행을 선호하지 않았음에도 여러 차례 진행 경력을 쌓았다. 1986년부터 1년 정도 뉴스 데스크의 '보도국입니다' 코너를 맡아 새끼 앵커로 데뷔했고 1993년 초부터 1년 동안 '뉴스 데스크' 주말 엥커, 1998년 가을부터 열 달 동안 아침뉴스 앵커로 일했다. 2008년 3월 말부터 1년여 동안 '뉴스 데스크'의 앵커를 했다. 신경민의 특징인 클로징 멘트는 2007년 이후에 매일 이어졌다. 2009년 4월 13일 뉴스 데스크 앵커에서 교체된 뒤 보도국 선임 기자로 일하며 30년 8개월간 언론인으로 일했다. 2012년 1월 민주통합당 대변인을 거쳐 같은 해 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영등포을에 당선됐으며 2013년 5월 초선의원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최고위원에 선출됐다. 저서로는《신경민의 개념사회》《신경민, 클로징을 말하다》, 공저로는 《대학생이 된 당신을 위하여》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