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념과 의심의 정치학』은 오크쇼트가 사망한 후에, 그가 거주하던 도싯 해안의 통나무집에서 발견된 원고 뭉치를 편집해서 출판한 책이다. 집필 날자가 적혀있지 않으나 여러 가지 정황을 종합할 때, 집필 시기는 1947년에서 1952년 사이인 것이 거의 확실하다. 이 시기는 『합리주의 정치 비판』에 집성된 논설문들을 『케임브리지 저널』에 기고하던 시기와 겹친다. 논의되는 주제들 역시 여러 면에서 공통된다. 따라서 여러 편의 각기 독립된 논설문의 형태로 제시했던 착상과 성찰을 더욱 치밀하게 전개해서 하나의 모노그래프 형태로 담아내고자 했으리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특히, 근대의 개막 이후 정치적 역사의 진행을 신념정치와 의심정치라고 하는 두 축 사이의 움직임으로 바라보는 시야는 이 책에서 형상화되고 있는 독특한 내용이다.
한국어 번역의 의의는 크게 두 가지를 말할 수 있다. 첫째, 이 책은 오크쇼트의 저술 가운데 첫 번째 한국어 번역본이다. 오크쇼트에 관한 관심은 국내에서도 커지고 있는 상황으로, 첫 번째 한국어본이 『신념과 의심의 정치학』이라는 데에도 의미가 적지 않다. 그의 저술 중에서 정치의 문제를 직접 논의하고 있는 작품이며, 『합리주의 정치 비판』보다 적은 분량에 더욱 체계적인 방식으로 논지가 개진되고 있다. 둘째, 이 책에서 오크쇼트가 제시하고 있는 정치에 관한 성찰은 한국 사회의 정치의식에서 그동안 대단히 심각하게 간과되어 왔던 점들이다. 한국 정치에서 소통의 부족, 극심한 진영 분열과 그러한 분열을 부추기는 이분법적 사고방식, 정치에 대한 과도한 기대와 성급한 실망, 그리고 기대와 실망의 양 끝을 속수무책으로 우왕좌왕하면서 공익과 안정을 기할 수 있는 중용과 균형의 길을 보지 못하는 풍토 등은 모두 오크쇼트가 진단하는 근대 정치의 문제와 맞아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