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보지 못했는가

서암 큰스님의 회고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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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ation Date 2013/04/07
Pages/Weight/Size 153*224*30mm
ISBN 9788985961738
Categories 종교 > 불교
Description
힐링이 필요한 현대인들에게 던지는 사자후

혼돈의 시대, 마음찾기의 나침반이 될 서암스님의 수행과 깨달음 이야기




만 마디 질문에 한마디로 답하신 분. 만 가지 말보다는 한 가지 행. 더 중히 여기신 분. 이 책은 서암 큰스님의 회고록이며 큰스님이 직접 구술한 내용을 이청 작가가 엮은 책이다. 서암 큰스님의 출가와 수행, 구도와 깨달음의 여정을 생생하게 볼 수 있고, 또 종단 개혁 과정에서 발생한 ‘종정사퇴’에 대한 큰스님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다.



서암 큰스님. 한국 최고의 선승禪僧. 한평생 수행자로만 살았다. 지리산 칠불암에서 도반들과 더불어 ‘공부하다 죽어도 좋다’고 서약하고 정진한 일화가 유명하다. 1978년 봉암사 조실로 추대되어 일반 관광객의 출입을 금지시켜 엄격한 수행 가풍을 진작해 봉암선원을 조계종 특별종립선원으로 만들었다. 1993년 12월 대한불교조계종 제8대 종정으로 추대되어 재임 140일 만인 1994년 4월에 사임하고 종단을 떠났다. 평생을 선 수행을 바탕으로 법문하고 공부했던 스님은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쉬운 ‘생활선禪의 법문’으로도 많이 알려져 있다. 스님은 언제나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하며 검소하고 소박하게 살아가셨다. 몸으로 실천했던 큰스님의 모습은 지금도 수행자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서암 큰스님 열반 10주기를 맞아 큰스님의 수행과 깨달음을 담은 회고록을 출간하는 이유는 삶이 풍요로워지면서도 정신적으로 행복하지 못하는 현대인들에게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고 청량수와 같은 시원함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분의 검소한 삶과 깨달음의 말씀을 통해 우리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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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s
[이야기를 시작하며] 가르칠 수 없는 진리를 가르치고 나누는 것

제1장 한마디라도 네 자신의 이야기를 해보라
나는 누구인가
기상을 죽이지 마라
죽음과의 첫 만남
육신의 굶주림과 마음의 굶주림
부처님은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오늘부터 너는 서악사의 머슴이다
김용사에서 출가와 수행
내 마음속의 갈증과 배고픔
일본 유학길
공부보다 생존이 절박했던 일본생활
나는 월급쟁이도 장사꾼도 아니었다
가난은 육체에 상처를 남기고
귀향
새로운 삶
다시얻은 생명 부활이다
청담스님, 성철스님 - 마지막 남은 비구들
청담스님 이야기

제2장 목숨을 걸고 길을 찾다
해방
불교청년운동
계룡산 토굴 속에서 여여한 마음을 보다
공부하다 죽을 각오로 시작한 칠불암 정진
계룡산에서6·25를 만나다
한국전쟁 당시의 원적사
원적사에 모인 수좌들
도도한 법맥이 서려있는 원적사
탁발과 동냥으로 원적사 살림을 꾸리다
벌목의 위기로부터 천년고찰을 지켜내다
봉암사재건을 위하여
양산박의 수좌들
수행자의 기상으로 가꾼 봉암사
산문출입을 막고 천년가람을 지키다
살아있는 봉암사의 선풍

제3장 잃어버린 붓다
한국 불교 근현대사의 중심, 비구
왜색불교의 척결과 정치권력의 결탁
정화불사의 아쉬움
경북불교를 위해 고생 좀 해 달라
문제는 사람이다
총무원장의 감투를 쓰고
조계사를 수행도량으로
10·27 법난은 부끄러운 일
성철스님을 종정으로 추대하다
법을 의지할지언정 사람을 의지하지 말라
조계종 8대 종정으로 취임
불교개혁을 시작하다
폭력은 또다른 폭력을 낳을뿐
종정, 개혁의 대상이 되다
종정불신임과 종정사퇴
종정에서 자유인으로
자유인

제4장 태어나기 전의 나는 무엇이었나
마음을 쉬는 것이 참선이다
참선은 자유를 얻는 길
어머니 뱃속에 들기 이전에 그대의 생명은 어디 있었는가
출가수행자는 직업이 아니다
먼저 종단이 안정되고 올바른 지도력을 갖추어야
세속의 욕망은 산문밖에 벗어두고 오라
출가수행자에게 주어진 가장 큰 선물
영혼과 육체는 하나인가 둘인가
우리 생명의 끝은 어디인가
열반은 생명이 본래 공空임을 깨닫는 것
부처와 중생의 씨앗은 다르지 않다
일천 칠백 공안이 어찌 그것뿐이랴
팔만사천 법문이 모두 마음 깨치라는 한 가지 소리뿐
일본의 선禪
어떤 화두를 선택해 참구했는가
죽음의 공포를 극복하는 것이 화두
그대가 묻고 내가 대답하면 그것이 곧 부처

제5장 흔들리지 말고 살아라
신은 어떻게 태어나게 되었는가
신은 죽었다
종교란 무엇인가
인간중심의 근본진리
누가 인생을 대신해 줄 수 있겠는가
삶을 행복으로 꽃피울 수 있는 사람
인간, 사회, 자연의 균형을 잃은 물질문명
불확실성의 시대
잃어버린 마음의 근본을 찾아
본래 마음자리로 돌아가는 자기발견
참선, 꿈에서 깨어나는 방법을 말하다
몸이 생기기 전의 자기 면목
자기 삶의 주인이냐 도둑이냐
영원한 생명에 대한 인식
어떠한 경계에도 흔들리지 않는 법
너 자신을 의지하여 진리를 스승으로 삼으라

제6장 미국부처, 인도부처
종교 자유와 종교 이기주의
종교, 정치를 넘어서야 한다
아픈 상처 속에서 피어나는 미래 불교
승려의 세계는 투명해야 한다
불법은 펄펄 살아서 행동하며 흘러가는 것
계는 부처님 법을 담고 깨달음을 담는 그릇
수행자의 음식과 비룡스님의 벽곡
나는 음식을 가린 적이 없고 관심을 가진 적도 없다
이 밥을 받는 것은 도업을 성취하기 위함이다
비구는 얻어먹는 사람
미국부처여, 자유를 찾으라
미국부처, 인도부처
따뜻한 남쪽나라, 거제도

제7장 마지막 대화
무위의 선승, 서암
거제도의 만남
언제 길을 갈 생각인가
회향하는 법
쑥국
감옥같은 선방, 선방같은 감옥
음식에 대한 욕구를 끊고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다
부처와 중생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민물에 사는 고래

[이야기를 닫으며] 큰스님을 그립니다 _ 이청

서암 홍근 대종사 행장
Author
서암,이청
한국 최고의 선승禪僧. 겉치레에 연연하지 않고 한평생 문중도 자기 절도 없이 수행자로만 살았다. 광복 이후 우리 사회가 매우 혼란스러울 때 당대 선지식이신 금오 스님을 모시고 지리산 칠불암에서 도반들과 더불어‘공부하다 죽어도 좋다’고 서약하고 용맹정진한 일화가 유명하다.
해인사, 망월사, 김용사 금선대 등에서 정진을 계속 하셨고 1952년 이후로는 청화산 원적사에서 다년간 정진하셨다. 1978년 이후 봉암사 조실로 추대되어 낙후된 가람을 전국의 납자 100여 명이 결제에 들 수 있도록 대작불사를 이끄는 한편, 일반 관광객의 출입을 금지시키고 엄격한 수행 기풍을 진작해 봉암선원을 조계종 특별종립선원으로 만들었다.
평생 선 수행을 바탕으로 법문하고 공부했던 스님은 사부대중이 이해하기 쉬운‘생활선의 법문’으로도 많이 알려져 있다. 선에 있어서도 생활속 실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 선이란 것은 어디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생활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일상생활에서 손 움직이고 발 움직이고 울고 웃고 이웃 간에 대화하는 그 속에서 24시간 불교를 찾는 생활, 그것이 선”이라는 것이 스님의 가르침이었다.
스님은 평생을 몸이 허락하는 한 언제나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하고 시봉 또한 두지 않은 채 검소하고 소박하게 살다가셨다. 이렇게 일생을 통해 부처님의 가르침을 몸으로 실천했던 큰스님의 모습은 지금까지도 수행자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1914년 경북 풍기에서 태어났으며 법명은 홍근鴻根, 법호는 서암西庵, 1993년 12월 대한불교조계종 제8대 종정으로 추대되어 재임 140일 만인 1994년 4월에 사임하고 종단을 떠났다. 2003년 3월 29일 세수90세, 법랍75세의 일기로 봉암사에서 입적하였고,“ 그 노장 그렇게 살다가 그렇게 갔다고 해라.”는 열반송을 남겼다. 저서로는 『그대, 보지 못했는가』,『그건 내 부처가 아니다』가 있다.
한국 최고의 선승禪僧. 겉치레에 연연하지 않고 한평생 문중도 자기 절도 없이 수행자로만 살았다. 광복 이후 우리 사회가 매우 혼란스러울 때 당대 선지식이신 금오 스님을 모시고 지리산 칠불암에서 도반들과 더불어‘공부하다 죽어도 좋다’고 서약하고 용맹정진한 일화가 유명하다.
해인사, 망월사, 김용사 금선대 등에서 정진을 계속 하셨고 1952년 이후로는 청화산 원적사에서 다년간 정진하셨다. 1978년 이후 봉암사 조실로 추대되어 낙후된 가람을 전국의 납자 100여 명이 결제에 들 수 있도록 대작불사를 이끄는 한편, 일반 관광객의 출입을 금지시키고 엄격한 수행 기풍을 진작해 봉암선원을 조계종 특별종립선원으로 만들었다.
평생 선 수행을 바탕으로 법문하고 공부했던 스님은 사부대중이 이해하기 쉬운‘생활선의 법문’으로도 많이 알려져 있다. 선에 있어서도 생활속 실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 선이란 것은 어디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생활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일상생활에서 손 움직이고 발 움직이고 울고 웃고 이웃 간에 대화하는 그 속에서 24시간 불교를 찾는 생활, 그것이 선”이라는 것이 스님의 가르침이었다.
스님은 평생을 몸이 허락하는 한 언제나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하고 시봉 또한 두지 않은 채 검소하고 소박하게 살다가셨다. 이렇게 일생을 통해 부처님의 가르침을 몸으로 실천했던 큰스님의 모습은 지금까지도 수행자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1914년 경북 풍기에서 태어났으며 법명은 홍근鴻根, 법호는 서암西庵, 1993년 12월 대한불교조계종 제8대 종정으로 추대되어 재임 140일 만인 1994년 4월에 사임하고 종단을 떠났다. 2003년 3월 29일 세수90세, 법랍75세의 일기로 봉암사에서 입적하였고,“ 그 노장 그렇게 살다가 그렇게 갔다고 해라.”는 열반송을 남겼다. 저서로는 『그대, 보지 못했는가』,『그건 내 부처가 아니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