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허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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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ation Date 2012/04/10
Pages/Weight/Size 153*224*20mm
ISBN 9788984315686
Categories 종교 > 불교
Description
유불선과 주역에 일가를 이루고 50년 전 일본 열도 침몰과 한반도와
국제사회의 미래를 정확히 예측한 탄허 스님의 1백년을 내다본 지혜 모음!


이 책의 저자 탄허 스님은 당대 최고의 석학 함석헌 선생님과 양주동 박사가 노장 사상에 대해 강의를 청해 들을 만큼 유불선과 주역에 큰 자취를 남겼으며, 불교계의 큰 어른이셨던 성철 스님의 존경을 한몸에 받았을 뿐만 아니라 정치권에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정치적 자문을 구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 책은 일간지와 주간지 또는 저자가 질문자와 대담한 자료 또는 이것을 지상에 직접 기고하고 게재한 자료 중에서 오늘 우리에게 절실한 가르침을 주는 것만을 구성하여 모은 것으로, 탄허 스님의 참다운 말씀을 통해 급변하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이 시대의 고민을 해결하고, 인생의 참다운 삶의 좌표를 확립하고, 아울러 민족미래를 전망하고 우리가 용기와 희망을 가지도록 하는 데 출간 목표가 있다.

이와 더불어 현대인들에게 간편하게 동양사상에 대한 일반적인 지식과 인생의 참다운 지혜를 가져다줌과 동시에, 자기 정립을 통한 인간성의 재발견에 크게 또 작게 도움을 주고자 하는 저자의 바람이 담겨 있다.
Contents
책머리에_다언多言의 병
내가 만난 탄허

1장 예지_대한민국과 주변국의 미래를 보다
도道가 깊어지면 예지도 깨어난다
‘보통사람과 다른 선견지명이 있다’
국난이 닥칠 것을 예지로 간파한 인물들
한·중·일에는 역사의 인과응보가 있다
한반도가 세계 문제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다
대한민국과 주변국의 관계에는 음양의 이치가 작용하니
빙하가 녹고 일본 열도가 침몰하리라
동아시아가 세계사를 주도하리라
비책秘冊에 담긴 민족사의 수수께끼

2장 정치_지도자의 역량이 국운의 방향타
지도자가 신뢰받을 때, 법法과 영令이 바로 선다
법과 형벌로 다스림은 하수의 정치다
탐심 있는 지도자를 경계하라
먹을 게 적은 것보다 공평하게 분배 못하는 것을 걱정하라
국가의 미래를 밤새워 고민하는 이들 말에 귀 기울이라
나라의 운명, 지도자의 심성에 달려 있다
국민을 위한 철학부터 갖추라
도덕을 숭상한 조상의 덕이 후세에 미치리라
미래 사회를 준비할 도의적 인물이 절실하다
국운이 트이는 시기,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3장 철학_한 마음이 꿈을 일으키고 우주를 일으키니
술術은 도道가 아니다
아는 것보다 아는 것이 끊어진 각覺을 좇아야
죽어도 없어지지 않는 놈이 제일 오래 사는 놈이다
마음은 우주의 본체
안목과 근기에 따라 수행법이 다르다
꿈인 줄 알면 해결되는 지혜
성인은 ‘성性’의 자리, 범부는 ‘정情’의 마음자리
생명이란 연緣을 만나 운행하게 되는 것
무엇으로 평생의 도道를 삼을 것인가?
교리에도, 불립문자에도 집착 말라
부처님은 오고 가는 것이 없다

4장 생사_태어난 이여, 죽음을 피할 길 없구나
참선 문에 들어서면 알음알이는 벗어 던져라
예禮, 법法, 정情으로 살아가는 삶
한마디 이르면 살고 그렇지 못하면 죽는다
참선, 마음공부의 핵심
근기에 따라 생사를 초월하는 방편들
잘못된 수행법
삶과 죽음의 문제를 자유로이 해결하는 법
생사 문제를 해결한 선사들
-남악회양 선사
-한암 선사
-경허 선사
고요한 곳에서 도를 닦는 것은 시끄러운 데 쓰기 위함이다
참되게 안다면 실행은 그 앎 가운데 있다
교敎와 선禪, 불교를 이끄는 두 개의 바퀴
지知와 각覺, 앎과 아는 것이 끊어진 자리
생사일여관에는 두려움이 없다
생의 의미와 죽음의 초극

5장 종교_3대 성인이 세상에 온 까닭을 아는가
자기 자신自信을 회복하는 길
종교는 바로 내 마음
천당 지옥의 유치원 법문이 생긴 까닭은?
시공이 끊어진 자리
우주 만유가 있는 그대로 평등하다
구원받는 2가지 방법, 이참理懺과 사참事懺
인류의 소장성쇠는 불멸의 법칙
화엄학의 가르침, 누구나 성불할 수 있다
말세라도 정신을 차리면 도에 이른다
자신이 바로 서지 않고서야 누구를 선도하겠는가
앞으로 다가올 미래, 종교의 교파를 넘다

Q & A 탄허 스님에게 듣는다
탄허 스님의 연보
Author
탄허
탄허는 1913년 독립운동가 율재(栗齋) 김홍규(金洪奎)를 부친으로 전북 김제에서 출생했다. 속명은 금택(金鐸), 신식 학교 교육이 시작된 시절이었으나 엄격한 가통(家統)에 묶여 신교육은 엄두도 못 내고 집에서 수학했다. 20세까지 유학을 공부하다가 다시 3년간 도교에 심취하였는데, 지금 ‘노장 철학의 대가’로 손꼽히는 도교 지식도 이때에 흡수한 것이다.

탄허 스님이 입산한 것은 스물두 살 때의 일로, 17세에 성혼하여 이미 아들까지 두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는 평생의 스승을 찾아 동서남북으로 구도의 편지를 띄우기 수 년, 당시 오대산 상원사에 있던 한암 스님의 성화(聖華; 훌륭한 이름)를 듣고 편지를 낸 데서 불교와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첫 답장이 오고 다시 편지 왕래를 하기 3년, 갓 쓰고 도포 입은 유생은 “3년, 길어야 10년”을 기약하고 오대산을 찾아들었으나, 한암 스님의 인품에 매료되어 이것이 영영 탈속의 길이 되었다.

스승인 한암 스님이 입적하기까지 21년 동안 줄곧 상원사에 머물렀던 탄허 스님은 6?25 이후 동래 범어사, 통영 용화사, 삼척 영은사 등지에 잠시 몸을 담았다가 격화하는 비구?대처 싸움을 피해 다시 상원사로 갔다. 이 시기를 제외한다면 그의 승려 생활은 오대산 상원사에서 보낸 것이 대부분이다.

1955년, 한국대학(지금은 폐쇄됐음)의 요청으로 맡았던 노장철학(老莊哲學) 강의는 오늘날까지 명강의로 유명하다. 처음 1주일 예정이었던 것이 수강생들의 요청으로 두 번에 걸쳐 연장, 두 달간을 끌었다. 이 강연의 수강생 명단에는 함석헌 선생에서부터 양주동 박사에 이르기까지 당대 쟁쟁한 학자들도 적잖게 포함되어 있어 그의 명망이 어느 정도였는지 엿볼 수 있다.

한암 스님은 생전에 화엄경론의 집필을 기구했었는데, 수제자 탄허 스님의 10년에 걸친 대불사도 그의 유촉에 의한 것이다. 1961년, 그 유촉을 받들어 방대한 규모의 화엄합론 번역을 시작했다. ‘자구(字句) 하나하나에 피가 맺히는 난해한 연의(演義) 작업’에 매달려 발원한 지 10년만인 1971년 봄, 원문 10조 9만 5천48자에 달하는 『화엄경』 80권 집필을 마쳤다.

부처가 행한 49년의 설법 중에서 가장 심오하고 위대하며 광대무변하다는 『화엄경』은 일본에서 번역?출판된 적은 있으나 논(論)을 번역, 주석한 학자는 없었다. 화엄학뿐만 아니라 동양 사상의 집대성이라고나 할 이 집필은 원고지로 6만 2천 5백여 장이나 되는 대불사이며, 출판 경비가 당시 무려 수천 만 원으로 추정되어 탈고 2년 반이 지난 시점까지 출판 기금을 마련하지 못했다. 그러던 중 이 얘기를 들은 일본불교신도회에서 원고를 사겠다고 나섰지만, 탄허 스님은 이를 뿌리쳤다. 후대에라도 좋으니 우리나라 국민들의 손에 이 원고를 꼭 넘겨주고 싶은 염원에서였다.

어렵사리 출판 기금을 마련하여 이 원고는 1975년 『신화엄경합론』이란 이름으로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으며, 탄허 스님은 역해 완간 공로를 인정받아 동아일보사 주최 제3회 인촌문화상을 수상했다. 이 경전은 자상한 주석을 곁들여 우리말로 옮겨 놓음으로써 “원효·의상 대사 이래 최대의 불사”를 이룩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평생을 불교 경전 연구와 번역에 전념한 탄허 스님은 선교 양종에 수많은 업적을 쌓았고, 이러한 체계 위에서 동양의 마음을 찾으려 애쓴 대표적인 선지식이자 선지자였다. 1983년 오대산 월정사 방산굴에서 세수世壽 71세, 법랍法臘 49세로 열반에 들기 전까지 탄허 스님은 동양의 역학 원리로 어제의 역사를 되돌아보고 내일의 역사를 예지한 선지식이자 선지자였으며, 비록 몸은 산간에 머물렀으나 눈은 우주의 운행을 꿰뚫어 보았다.
탄허는 1913년 독립운동가 율재(栗齋) 김홍규(金洪奎)를 부친으로 전북 김제에서 출생했다. 속명은 금택(金鐸), 신식 학교 교육이 시작된 시절이었으나 엄격한 가통(家統)에 묶여 신교육은 엄두도 못 내고 집에서 수학했다. 20세까지 유학을 공부하다가 다시 3년간 도교에 심취하였는데, 지금 ‘노장 철학의 대가’로 손꼽히는 도교 지식도 이때에 흡수한 것이다.

탄허 스님이 입산한 것은 스물두 살 때의 일로, 17세에 성혼하여 이미 아들까지 두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는 평생의 스승을 찾아 동서남북으로 구도의 편지를 띄우기 수 년, 당시 오대산 상원사에 있던 한암 스님의 성화(聖華; 훌륭한 이름)를 듣고 편지를 낸 데서 불교와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첫 답장이 오고 다시 편지 왕래를 하기 3년, 갓 쓰고 도포 입은 유생은 “3년, 길어야 10년”을 기약하고 오대산을 찾아들었으나, 한암 스님의 인품에 매료되어 이것이 영영 탈속의 길이 되었다.

스승인 한암 스님이 입적하기까지 21년 동안 줄곧 상원사에 머물렀던 탄허 스님은 6?25 이후 동래 범어사, 통영 용화사, 삼척 영은사 등지에 잠시 몸을 담았다가 격화하는 비구?대처 싸움을 피해 다시 상원사로 갔다. 이 시기를 제외한다면 그의 승려 생활은 오대산 상원사에서 보낸 것이 대부분이다.

1955년, 한국대학(지금은 폐쇄됐음)의 요청으로 맡았던 노장철학(老莊哲學) 강의는 오늘날까지 명강의로 유명하다. 처음 1주일 예정이었던 것이 수강생들의 요청으로 두 번에 걸쳐 연장, 두 달간을 끌었다. 이 강연의 수강생 명단에는 함석헌 선생에서부터 양주동 박사에 이르기까지 당대 쟁쟁한 학자들도 적잖게 포함되어 있어 그의 명망이 어느 정도였는지 엿볼 수 있다.

한암 스님은 생전에 화엄경론의 집필을 기구했었는데, 수제자 탄허 스님의 10년에 걸친 대불사도 그의 유촉에 의한 것이다. 1961년, 그 유촉을 받들어 방대한 규모의 화엄합론 번역을 시작했다. ‘자구(字句) 하나하나에 피가 맺히는 난해한 연의(演義) 작업’에 매달려 발원한 지 10년만인 1971년 봄, 원문 10조 9만 5천48자에 달하는 『화엄경』 80권 집필을 마쳤다.

부처가 행한 49년의 설법 중에서 가장 심오하고 위대하며 광대무변하다는 『화엄경』은 일본에서 번역?출판된 적은 있으나 논(論)을 번역, 주석한 학자는 없었다. 화엄학뿐만 아니라 동양 사상의 집대성이라고나 할 이 집필은 원고지로 6만 2천 5백여 장이나 되는 대불사이며, 출판 경비가 당시 무려 수천 만 원으로 추정되어 탈고 2년 반이 지난 시점까지 출판 기금을 마련하지 못했다. 그러던 중 이 얘기를 들은 일본불교신도회에서 원고를 사겠다고 나섰지만, 탄허 스님은 이를 뿌리쳤다. 후대에라도 좋으니 우리나라 국민들의 손에 이 원고를 꼭 넘겨주고 싶은 염원에서였다.

어렵사리 출판 기금을 마련하여 이 원고는 1975년 『신화엄경합론』이란 이름으로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으며, 탄허 스님은 역해 완간 공로를 인정받아 동아일보사 주최 제3회 인촌문화상을 수상했다. 이 경전은 자상한 주석을 곁들여 우리말로 옮겨 놓음으로써 “원효·의상 대사 이래 최대의 불사”를 이룩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평생을 불교 경전 연구와 번역에 전념한 탄허 스님은 선교 양종에 수많은 업적을 쌓았고, 이러한 체계 위에서 동양의 마음을 찾으려 애쓴 대표적인 선지식이자 선지자였다. 1983년 오대산 월정사 방산굴에서 세수世壽 71세, 법랍法臘 49세로 열반에 들기 전까지 탄허 스님은 동양의 역학 원리로 어제의 역사를 되돌아보고 내일의 역사를 예지한 선지식이자 선지자였으며, 비록 몸은 산간에 머물렀으나 눈은 우주의 운행을 꿰뚫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