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는 정토신앙이 성행하여 대중들의 일상생활 속으로 파고 들어간 시기이다. 그런데 이러한 정토신앙의 사상적 근거가 되는 책으로 널리 읽힌 책은 무엇인가? 정토신앙을 확산하는 데 기여한 것은 저경底經 외에 어떤 장르가 있었는가? '염불보권문'은 이러한 의문에 대해 어느 정도 해명해 줄 것으로 기대되는 책이다. 이 시기 정토신앙의 기본 지침이 된 책으로는 중국에서 건너온 '연종보감蓮宗寶鑑' 등이 있었지만 일반 대중들에게까지 정토신앙을 전파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이에 한문 경론과 한글 번역을 함께 붙이고, 일반인들도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우리말 가요까지 함께 펴낸 '염불보권문'이 등장하였는데, 18세기 약 1백 년에 걸쳐 전국의 사찰에서 여러 차례 판각되어 파급효과가 컸다. 이는 이 책의 간행이 당대 불교사회의 요망에 따른 것이었음을 반증한다.
이 책이 최초로 형성된 것은 1704년 경북 예천 용문사에 주석하던, 자칭 ‘청허 후예’인 명연明衍 스님에 의해서이다. 그는 여러 불전佛典에서 취사하여 염불문念佛文을 만들고 우리말과 글로 옮겨 선남선녀가 쉽게 통달해 알도록 함으로써, 생사의 고해를 벗어나 서방극락에 왕생하고 모두 불도를 이루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염불보권문'을 간행하였다. 이 책의 수요는 당시 매우 많았던 듯하다. 그래서 1741년에는 팔공산 수도사에서, 1764년에는 팔공산 동화사에서, 1765년에는 황해도 구월산 흥률사와 평안도 묘향산 용문사에서 각각 속간되었다. 그리고 1776년에는 합천 해인사에서 앞서 간행한 '염불보권문'을 참고하되, 이본 간에 서로 내용이 중복되지 않도록 여러 글을 선정하고 새로운 글들을 추가해 판각하기도 하였다. 해인사본 '염불보권문'은 18세기에 민중들이 실제생활에서 보고들은 각종 불교적 신앙체험과 당시에 유포되어 있던 여러 글 중에서 실천 가능하면서도, 정토신앙淨土信仰과 관련된 각종 글들을 최대한으로 수렴하여 집대성한 것으로서, 18세기 당대의 불교 종합 포교선집이라 평가할 수 있다. 이번 번역의 대상이 된 문헌도 바로 한국불교전서에 수록되어 있는 해인사본이다.
원래 이 책은 한문과 옛한글이 서로 짝을 이루어 편집되어 있는데, 본 번역에서는 한문은 한문대로 독립적으로 번역하고, 옛한글 부분 역시 독립적으로 번역하였다. 이 과정에서 두 부분이 완전히 일치하는 경우도 있지만, 압축?생략?부연?확장 등 다양한 방식의 전변 과정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따라서 이 책은 조선 초 언해 불서 간행의 전통과 견주어 조선 후기의 번역 양상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적 가치가 있다. 또 여기에 수록된 〈왕랑반혼전〉, 〈서왕가〉, 〈회심가〉 등은 문학사에서도 주목하는 작품이어서 다양한 측면에서 이 책에 대한 수요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