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봉 기대승은 퇴계 이황과의 사단칠정논쟁으로 유명한 조선의 성리학자이다. 잘 알려진 바대로 사단칠정논쟁은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학술논쟁 중 하나이다. 우리가 아는 ‘유학의 조선’, ‘성리학의 조선’은 이 논쟁 이후에 본격화하였다고 할 수 있다. 이 논쟁은 노년의 대학자와 막 벼슬길에 오른 신진관료 사이에 있었던, 권위를 벗고 나이를 초월하여 진정한 학문의 자세를 보여 준 미담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두 학자는 이 논쟁을 계기로 생을 마칠 때까지 아름다운 교유를 이어갔다.
사단칠정논쟁에서 고봉은 주로 주자의 문집과 『성리대전』에 수록되어 있는 내용들을 인용하였는데, 고봉이 주요 논거로 들었던 ?여호남제공서與湖南諸公書? 같은 대부분의 글들이 『주자문록』에 정리되어 있다. 이미 젊은 나이에 주자의 글을 일람하고, 그것을 소화하여 핵심을 모아 편집했다는 것을 보면 20대에 불과한 고봉의 학문적 성취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사단칠정논쟁이 고봉으로부터 시작된 것을 우연이라고만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고봉이 『주자문록』을 편찬한 후 퇴계가 『주자서절요』를 편찬하였는데, 이 두 책은 신진기예가 편찬한 책과 노성한 대가가 편찬한 책이라는 점에서 각기 다른 맛을 보여 준다. 『주자서절요』를 통해 인간 주자에 대한 깊은 이해를 할 수 있다면, 『주자문록』에서는 주자의 사상과 문장의 정화를 엿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