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유교라는 종교 자체에 방점을 두기보다는, 유교가 언제부터, 무슨 계기로, 어떤 이들의 움직임으로 시작되었는지를 밝히는 ‘유교의 기원’이라는 주제에 초점을 맞추었다. 저자 김경일은 연구에 참고할 만한 수많은 문헌들, 특히 중국 고금의 문헌 및 한국과 일본, 심지어 서양 연구자들의 논문까지 뒤져보았지만 관련서의 존재는 놀라우리만치 희박했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가장 큰 이유는 ‘유교는 공자가 창시했다’는, 검증된 일 없는 역사 상식 때문이었을 것이다. 또 저자가 말하길, 동양 문헌 대부분이 이른바 [논어][맹자]와 같은 경학의 텍스트들인지라, 다시 말해 감시되고 걸러진 것들이라 이를 읽은 사람들이 다른 생각으로 나아가기 힘들었을 거라 진단하다.
본문의 전반적인 과정을 살펴보면, 원시문명 시대의 자연숭배문화부터 시작하여, 상나라의 조상신 및 절대신, 그리고 강력한 종법제도와 봉건사상이 자리한 주나라 때의 ‘천(天)’ 사상과 ‘예(禮)’ ‘성(聖)’ ‘효(孝)’ ‘인(仁)’과 같은 유교를 대표하는 주요 가치의 원형을 되짚어 나간다. 무엇보다 본문의 후반부에서 유교의 ‘유(儒)’의 자형을 찾아가며 그 정체를 고증하는 대목은 이 책의 흥미진진한 클라이맥스 부분이다. 자연스런 역사 및 문화적 흐름이 중화사상의 옷을 입은 정치적 연출과 덧입혀진 왜곡으로 인해, 유교라는 근엄하고 거대한 추상적 존재물을 만들어놓은 것이다.
한국인 최초로 갑골학 박사학위를 받은 이력답게 그는 이 주제를 탐구하기 위해 [논어]와 같은 경학 텍스트가 아닌 명백한 문자 사료들을 증거자료로 삼았다. 상대 갑골문과 서주, 춘추, 전국시대의 청동기 기록, 그리고 전국시대, 진대의 죽간 등 오래된 날것 그대로의 실록을 통합적·귀납적으로 다루며 살펴보았다. 역사를 지나오면서 학자들의 윤색이나 가감의 연출이 애초에 불가능한, 이 명백한 1차 사료야말로 동양사상의 태생 지점을 추적하는 데 가장 믿을 만한 증거이다.
Contents
여는 말 - 유교는 어떤 상황 속에서 시작되었을까?
1장 유교문화의 기원을 어떻게 살펴보아야 할까?
2장 대자연과 조상신, 혼잡으로 존재하다
- 자연숭배, 그러나 또 하나의 선별
- 궁극적 절대신의 추구, 제
- 뒤섞인 조상신
3장 상족의 조상, 절대신이 되다
- 조갑과 제례 혁명
- 순혈주의와 조상신의 재분류
- 절대신 상제의 소멸
- 조상 제사의 우주론적 정비
- 남과 여, 그리고 조상신의 영역
-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정치
4장 주족의 조상, 정치의 중심에 서다
- 혈통 숭배의 계승
- 종법제도의 심층 구조
- 천의 정치학
- 효와 통치술
- 예와 권력 관리
- 자와 손, 그리고 영원회귀
5장 주대 청동기에 인이 보이지 않다
- 인의 불편한 진실
- 인과 성의 표층과 심층
6장 유란 무엇인가?
- 신과 인간을 잇는 통혼자로서의 무
- 비를 부르는 특정 무로서의 유
- 군자, 문화 권력으로서의 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