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 전권 하에서 히틀러의 앞잡이 노릇을 하던 국가교회를 탈퇴하여 지하고백교회(Confession Church)의 목회자이자 신학자로 활약했다. 어둡고 혼탁한 시대를 살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진정으로 사모했던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을 들으려고 시편 앞에서 오래 침묵했던 사람이었던 본회퍼의 삶과 사상은 매일의 삶 가운데서 참다운 그리스도인의 삶이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결단해야 하는 현대 기독교인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본회퍼와 함께 시편을 명상하면서 그 가운데서 본회퍼가 했던 것처럼 주님의 기도하는 음성을 들어보자.
Contents
서론 :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없이는 살 수 없다
Ⅰ. 명상이란 무엇인가?
일상적인 명상에 대한 지침
아침
오로지 성경으로만 - 루디거 슐라이허 박사에게 보낸 편지
동지들의 전사 - 전시에 쓴 편지
Ⅱ. 시편설교
시편 62편 - 삼위일체 주일 후 여섯 번째 주일 설교
시편 42편 - 부활절 후 여섯 번째 주일 설교
시편 50편 1-6절 - 강림절을 위한 설교 개요
시편 90편 - 본회퍼가 할머니 장례식에서 한 설교
시편 58편 - 복수의 시편에 대한 설교
시편 34편 19절 - 의인들의 고난에 관한 설교
Ⅲ. 시편 119편에 대한 명상
시편 119편에 대한 명상
주(註)
“독일의 양심”으로 불리는 천재 신학자 본회퍼는 브레슬라우의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출생하여 많은 형제자매들과 함께 자랐다. 1927년 신학박사학위를 받았고 1930년에 베를린 대학에서 교수 자격을 취득했다. 목사안수를 받기에는 너무 젊은 나이라 뉴욕의 유니온 신학부에서 연구기간을 1년 가졌다. 독일로 돌아가 베를린 대학에서 강의하였고 목사안수를 받았다. 나치 정권의 교회 간섭이 심해지자 이에 대항하는 교회저항운동에 가담하였으며 고백교회(Bekennende Kirche)가 세운 목사후보생(Vikar) 교육기관(Predigerseminar)의 책임자로 섬겼다. 1937년에 이 학교가 폐쇄되자 장소를 옮겨가며 1940년 3월까지 목회자 양성 교육을 계속하였다.
그 후 잠시 미국에 갔을 때, 주위의 강력한 망명 권유가 있었으나 뿌리치고 2차 세계대전 직전에 귀국했다. 독일에서 다시 나치에 저항하다가 히틀러 정권 전복단체에 합류, 1943년 체포되어 1945년 4월 9일 나치정권 붕괴 직전에 교수형을 당했다. 1925년에서 1945년까지 저서 여섯 권, 연구 논문 열한 편을 비롯하여 설교, 서신, 여행 일지, 학회 일지, 희곡, 소설, 시 등의 다양한 저작을 남겼다.